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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을 탐하는 룬티카의 망령 」
자, 막이 올랐으니 극을 연주하지.
@maljamom 님의 커미션입니다.
Phantom
팬텀
유령 :: 25 Y :: 180 Cm :: 54 Kg
그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코 얼굴의 반을 가리는 새하얀 가면일 것이다. 유령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무엇으로든 존재하는 법. 그 가면 아래의 얼굴 역시 알 수 없기에 유령이라 칭해지는 것일까. 얼굴을 덮은 가면으로도 채가려지지 않은 낯의 일부는 사람이라 칭하기 힘들 만큼 미형의 그것이었다. 남성? 여성? 제대로 된 성별조차도 가늠되지 않은 그것의 입꼬리가 유려한 호선을 그린다. 입술 선을 따라 휘어지는 붉은 빛이 요사스럽기 짝이 없더라.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얀 이였다. 새하얀 가면. 그것과 똑같은 새하얀 머리. 새하얀 중절모에 머리에 쓴 베일, 거기에 더해 새하얀 정장 차림까지. 덩굴에 휘감긴 듯 온 몸에 그려진 문신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맨 피부와 발 아래 신은 구두마저도 하얀 그것은 너무 하얘 되려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지. 그리고 그러한 하얀 빛 사이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지닌 것은 붉은 색이었다.
가면의 한쪽 면에 새겨진 붉은 장미가 하나. 가슴에 핀 장미가 하나. 귀에 걸린 장미가 하나씩. 중절모에도 몇 송이 장식할까. 그렇게 하면, 마치 오롯이 장미를 위해 온 몸을 하얗게 도배한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 장미를 위해 이 곡을 연주하자. 하얀 장갑으로 길죽한 손을 가린 이가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스레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은 오롯한 아름다움을 위해.
가면 사이, 마주친 붉은 빛이 둥글게 휘며 웃음 짓는다.
이것은 낙원으로 향하는 연주. 극의 주인공은... 그대로 할까.
자, 춤을 추고 노래하자. 이미 희극의 막은 올라 왔으니.


비밀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법.
그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 한다면, 많은 이들이 쉽게 답하지 못하리라. 그만큼 그는 비밀이 많은 이였다. 이름, 습관, 취미, 취향... 아니 애초 이름부터 보이지 않는가. 유령이라니, 세상 어느 누가 그런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할까.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그는 행하였지. 그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표하고 싶은지 매일매일 하는 행동이 달랐다. 어느 날은 왼 손으로 글을 쓰는가 싶으면 어느 날은 오른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또 어느 날은 음도 박자도 맞지 않은 알 수 없는 곡조를 흥얼거리고. 그래, 마치 습관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했었지. 아니 때로는 여태 봐온 그가 모두 동일 인물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는 그가 유령인 탓일까, 아니면 타인이 자신을 파악하게 두지 않으려는 것일까.
어찌 유령을 손으로 잡겠는가.
그는 바람 같은, 혹은 정말 유령과도 같은 이였다. 그 둘의 공통점이라면 결코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고, 또한 조금의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일 터였다. 무게감은 때론 존재감으로 여겨진다던가. 유령은 이따금 존재라는 것이 있는 듯 없는 듯 가벼이 굴었다. 언제라도 이 땅을 벗어나 훌쩍 날아갈 듯이, 그러면서도 네 앞에 발을 붙이고 존재하고 있다는 듯이. 유령의 행동에 무게를 두지 말라. 어차피 그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망령이니까.
그래, 그것은 작은 악마였다.
상시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언제나 여유로운 그것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묘한 톤의 목소리는 늘 웃음기가 서려있었으며, 가벼운 어조와 정중한 행동에서는 채 지우지 못한 장난기가 드문드문 보이고는 했다. 아름다움에 이어 유쾌함을 쫓기라도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그것은 즐거운 것을 못내 좋아하고는 하였다. 아, 저것도 아름다움의 일종이라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지.
자신을 보는 이들을 향해 그것이 광소하였다.
【 특이사항 】

그것이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생일 불명. 출신지 불명. 이름 불명. 성별 불명. 얼굴을 보면 아마도 20대. 단지 그것 외에는 무엇도 알 수 없는 이는 그저 아름다움을 찾아 룬티카를 떠도는 망령이었다.
그대, 룬티카의 망령을 들어 보았는가?
역사와 기록의 도시 룬티카의 지하에는 고통도 슬픔도 없는 오로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낙원이 숨겨져 있다고. 그 낙원으로 가기 위해선 오로지 선택 받은 이들만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여기에 낙원에서 쫓겨났지만 영원한 낙원을 꿈꾸는 자가 하나. 오랜 시간 낙원을 찾아 헤매다 낙원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발을 멈춘다. 망령이 발을 멈춘 곳은 붉은 꽃이 만개하더라.
....
한때 그런 연극이 프레이야르에 성행한 적이 있었다. 룬티카의 유령이라 불리우는 연극에서 그 유령은 미의 화신이라는 여인을 만나 비뚫어진 사랑으로 소유하려 하였으나, 그 여인의 동정 어린 사랑을 맛보고는 조용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대의 앞에 있는 이는 그 연극의 일면일까, 아니면 그 연극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나타난 실존하는 망령일까. 눈 앞의 이는 마치 그 연극 속의 배우처럼 말하고 행동하였다.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오롯한 아름다움 뿐.
그는 마치 연극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행동하고 말하였다.
손짓 하나, 시선 하나, 때로는 말하는 어조마저도. 그탓인가 그 무엇보다 존재감이 강하였지만 동시에 유령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 누구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고 드러난 것마저 미색이 가득하니 어쩌면 실제 배우가 저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지.
축제 기간 동안 그가 무언가를 먹는 것은 보기 힘들었다.
분명 사람이니 먹긴 먹을 텐데...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유령이라는 역할을 위한 컨셉일지도 모르지.
룬티카의 망령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그것은 아름다운 것에 쉽게 시선을 향했고 쉽게 그것에 동하고는 하였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었지만 그것은 유독 붉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더랬지.
붉은 장미, 붉은 드레스, 붉은 머리칼, 붉은 눈동자... 그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것은 붉디 붉은 보석이었다.
그 어떤 광채도 저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마리라.
그것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것은 자신을 꽁꽁 숨기고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온 몸에 흉터처럼 자리한 문신 아닐까. 장미 덩굴을 연상시키는 금빛의 문신은 마치 그 몸을 속박하려는 듯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때그때 흥미 주제가 바뀌고는 한다. 변덕스러운 것인지 비밀스러운 것인지 헷갈릴 정도. 그나마 일관 적인 태도라면 아름다움에 관한 것일까.
쉿. 망령에 대한 것은 그리 중요치 않지.
중요한 것은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가면 아래 붉은 빛이 둥글게 휘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