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 아래 가장 아름다운 꽃 」
보렴. 생의 끝에 남는 붉음이란.
아름답지 않나?
Lian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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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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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가면을 벗으면 드러나는 낯은 여전한 미형의 것이다. 중성적이라 평해질 낯 둥글게 휜 눈매. 입술과 눈가의 붉은 기.
마주한 붉은 빛이 둥글게 휘어간다.
망령의 가면 아래를 들추어 비밀을 마주할 각오가 되었는가?
벗은 가면을 내려놓으면서 유령의 존재도 내려놓는다.
페도라와 베일을 그 옆에 놓아두고 허리께에서 굽이치던 새하얀 머리를 틀어 올려 피안의 형상을 띈 비녀를 꼽아 보였다. 린에서 볼 수 있다던 피안의 꽃, 그 아래에서 달랑이는 붉은 태슬과 금속의 장신구. 아, 저 하얀 나비는 린에서도 유명한 연 가의 상징이 아니던가.
틀어 올려진 머리 아래로 비녀에 달려있던 새하얀 천이 나풀이며 흘러내린다. 그것은 마치 신부의 면사포처럼 보이더라.
그렇다면 신랑은 누구지? 아 그래. 저 붉은 빛으로 하자.
죽음 없는 이의 죽음으로서 완성되는 저 광채야말로 미의 절정 아닌가.
언제 꽁꽁 싸맨 적이 있었냐는 듯 군복을 입은 그는 맨 살을 드러내는 데에 거부감이 없었다. 꽃같이 피어난 문신들이 흉터처럼 그를 옭아맨다. 그 속에서 그는 여유롭게 손을 움직이며 웃는다.
차려 입은 군복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매우 다른 형태였다. 아니, 분명 원본의 형태는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
분명 코트였던 그 기다란 겉옷은 케이프처럼 짧게 해서 두르고 있더라. 어쩔 수 없지. 제 몸이 보여야 제 능력의 상태를 알 수 있으니. 그마저도 전투 중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케이프를 벗어 던진 것이 몇 번이던가. 용케도 가면과 함께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더라. 아니 그동안 꽁꽁 싸맸으니 이제 그만 두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케이프를 벗어내면 전투복의 코르셋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가슴까지 채워 올리는 식이라는 게 다르려나. 본인은 불편한지 지퍼를 끝까지 채우지 않았지만, 그래도 특이할 것은 없어 보인다. 문제라면 그 코르셋과 하네스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훤히 들어난 어깨와 팔에서 덩굴이 춤을 춘다.
하의는 군복과 동일하다. 단지 드러난 다리가 짧은 바지 탓에 훤히 보일 뿐. 워커도 발목만 덮긴 하지만, 그것 뿐. 가려진 쪽은 정복이나 다름 없으니... 뭐 헐벗지도, 신발을 제대로 신고 있는 것 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새하얀 머리칼, 그와 반대로 색을 품은 붉은 눈동자. 특이하게도 일전 가면으로 가렸던 쪽의 눈동자는 분명 붉은 빛이었음에도 보석 마냥 어딘가 이질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꽃을 담은 듯, 보석을 담은 듯 광채를 뿜어내는 눈동자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리라.
되려... 인형의 그것과 닮지 않았나. 기울어지는 고개를 따라 데굴룩 굴러가는 그것은 생기라고는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의 눈을 보라. 질척이며 달라붙는 시선. 미를 탐하는 웃음.
저것은 사랑(광기)에 빠진 이의 것이다.

【 성격 】
사랑이 어찌 정상이겠는가.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으니 광기에 빠져야지.
사랑. 그것에 미친 사람을 보았는가?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때론 위험하며, 정상적인 사고도 불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는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이였다. 단지 그 사랑의 대상이 생물이 아닐 뿐. 그는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였고, 또한 애정하였으며, 때론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고는 하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을 포기 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이기적인 이였지. 희생, 측은지심, 그것 또한 사랑의 일면임에도 그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도려내진 것 같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즐거움을 쫓는다고 해야 하나. 쾌락을 쫓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그의 사랑이 광기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인간이 소유해선 안 될 것을 보고 사랑에 빠졌으니 그 말로는 하나밖에 없겠지.
꽃은 통제해봤자 어디든 뿌리를 내리는 법.
그와 통제라는 단어는 굉장히 먼 편이었다. 용케 군인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의 출신을 생각하면 군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왜 저렇게 제멋대로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변덕이 들끓다 못해 모든 것은 자기 마음대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마냥 그는 제 행동에 그 어떠한 제약도 두지 않았다. 아니, 그 제약이 단순한 행동의 제약을 넘어 인지적인 무언가조차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공포, 걱정, 두려움, 그러한 것이 사람에게서 잘라져 나왔기에, 그래서 더욱 머뭇거릴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 이. 공포도 무엇도 느끼지 않으니 그저 가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발을 내딛는 이. 식물이 어디로 뿌리를 내릴지는 알 수 없는 법이라고 하던가. 딱 그를 향해 하는 말 같았다. 그가 인간이란 가정은, 당장으로서는 치우도록 할까.
사람은 꽃이 아니니 어찌 꽃처럼 살고 꽃처럼 죽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꽃인 것 마냥 굴었다. 인간성의 결여인가, 아니면 그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상실일까. 어쩌면 제멋대로이고 광기 어린 행동 뒤에 자리 잡은 냉정함이 그를 그리 보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사람은 공포심이 없으면 자제를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성이 부족한 이는 맺고 끊는 것에 칼과도 같아 지는 것일까. 사회성은 분명 지니고 있었으며 하고자 한다면 신사적인 행동도, 매너가득한 얼굴도, 때로는 누군가를 향한 동정도 표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의 가슴까지 닿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은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위해. 그는 쾌락을 쫓는 이 마냥 굴었으니 거기에 인간성도, 공감능력도,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지.
시선의 끝, 혐오 어린 시선을 받으며 그가 광소하였다.
【 능력 】
월하미인 (月下美刃)
어찌 태양 아래에서만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 할 수 있겠는가.
달 아래에서도 빛나니 그야말로 경국지색이더라.
그는 덩굴이었다. 치명적이도록 아름다운 덩굴 장미. 황금 빛으로 빛나는 덩굴,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은 마치 보석처럼 빛이 나더라. 그 모습은 하나의 예술 품이라 칭하여도 손색이 없었다.
정확히 그의 능력은 몸에 새겨진 문신을 실체화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손끝을 따라 황금 빛의 덩굴이 모습을 갖춘다. 무언가를 옥죄어야 한다면 채찍이 되기도, 베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덩굴을 모으고 모아, 검처럼 형상화 하기도, 때로는 그저 덩굴 그 자체로서. 심지어 피어난 장미는 일종의 카메라 같아서 좁은 시야각을 대신하기도 하였지.
다만 형태가 어떻게 바뀌든, 어떤 능력을 지녔든 결국 그 뿌리는 인간의 신체이기에. 꽃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있기에. 당연히 그 범위 역시 한정적 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덩굴(신체)에서 떨어지면 그때는 그저 평범한 꽃과 덩굴에 불과하니, 아쉽다면 아쉬울까.
그는 라트리 약물을 섭취하면 바로 몸에 변화를 보이는 타입이었다.
몸에 새겨진 덩굴 문신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그 사이사이로 본래는 없던 붉은 장미꽃이 하나하나 제 존재를 드러내더라. 마치 그의 숨어있던 잠재력 마냥 개화한 꽃들은 그 수가 그의 컨디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만개한 장미 꽃의 수가 많을수록 그의 힘은 강해졌고, 그만큼 제어력 역시 수준급이 되곤 하였다. 다만 컨디션이 낮을 때면, 혹은 몸 상태에 이상이 있다면 꽃의 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지.
장미꽃은 일종의 지표였으며, 한계를 가리키기도 한다고 해야 할까. 마치 몸 주인이 제어란 것을 모르니 몸뚱아리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 같기도 하니...
피어난 꽃의 수 그 이상으로 다루는 것은 몸에 부담이 되는 편이라, 보다 편리한 체크를 위해 옷차림이 현재의 것처럼 되어 버렸다. 행동에 제한을 둘 생각은 없지만, 죽더라도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 특이사항 】
련화(戀花). 초봄 출생. 출신지 린 섬. 사관학교 출신. 웨스페르 계급.
한 줄도 안 될 이야기로 어찌 그를 파악하겠는가?
보석은 겉보기보다 더 많은 것을 품는 법이다.
그가 속한 가문은 린에서도 아주 오래된 가문으로, 그 뿌리가 린 국에 닿을 정도였으나 지금으로선 수많은 군인을 배출해낸 연(戀)이다. 다만 전대 가주들과 비교하였을 때 그 누구도 새하얀 머리와 붉은 눈을 지니지 않았기에 양자라던가 사생아라던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 다만 추적 결과 연 화의 이름이 호적에 올라온 것은 태어난 직후였으니 당연 헛소문으로 치부되었다.
연 가문 본가의 식솔을 비롯한 직계 혈육들은 모두 7년 전 뱀파이어에 의해 벌어진 참사에 의해 사망하였고, 그 자리의 유일한 생존자는 연 가문의 여아 하나와 그 가문이 맡아 기르던 비스트 하나 뿐이었다. 당시 사건을 하얀 나비가 붉게 물들었다 하여 혈야홍접(血夜紅蝶)이라 부른다지.
이후, 린에서 백금으로 된 새하얀 나비를 달고 다닐 사람은 세상에 몇 남지 않았다.
연 가문은 독특하게 매 세대 비스트를 하나씩 맡아 기르는 편이었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소가주의 배동으로서 기르기 위함이라던가. 차후 비서로서 쓰기 위함이라던가.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 뭐, 덕분에 그 비스트는 전장에 나가기 전까지 가문 내에서 호가호식하니 좋은 일 아니겠는가.
연 가문은 바보천지가 아니고서야 모두가 사관학교를 필수로 이수하였고,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관학교의 동기라면 알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시의 그는 매우 조용하고 반응이 없어 꼭 인형 같았다는 것을.
뭐, 그 당시에도 붉은 색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똑같긴 했다만.
사관학교 내에서 성적은 상위권에 속했다. 수석 졸업이라던가, 차석 졸업이라던가. 그런 그가 갑자기 니샤카라가 된다는 소문에 놀란 이들이 꽤 되긴 했었지? 그러고 보니 이때가 혈야홍접 사건 이후였던가. 이때부터 조용하던 애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더라지.
29이라는 해당 직급의 평균 나이에 비하면 한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과 7년만에 웨스페르 계급을 손에 쥐었다. 임무 성공률 95%. 뱀파이어 검거율 80%. 임무 중 노블레스 포획율 98%. 들리는 소문에는 니샤카라 5년차부터 웨스페르 계급을 달 것이란 소문이 뒤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계급을 단 것은 해당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이라고.
높은 임무 성공률과 잦은 언급에도 진급이 늦어진 것은 다름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돌발 행동이 종종 보였기 때문. 자제가 없는 듯한 과한 손속과 노블레스가 아니면 급격히 흥미를 잃는 행동에 진급에 관해 언급은 있었으나 지금까지 미뤄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빠른 진급이란 것은 다르지 않다만.
전투 방식에 있어서 자제란 없다. 자신의 몸 상태를 돌보지 않으니, 그 때문에 피투성이가 된 경험도 여럿이던가. 정작 본인은 제 상처에 무감해 보였다. 하긴, 그건 몸의 문신만 봐도 알 수 있겠지.
통제 안 되는 행동을 자주 함에도 명령에는 반발을 보인 적이 없다.
무슨 불합리한 명령에도 수긍적이고, 내려온 임무는 취사선택이 아닌 전부를 택하니, 군 내에서는 녹스의 개라고 불리울 정도.
타인을 칭할 때는 귀공, 그대, 귀하 등. 상대를 높이는 칭호를 쓰는 것에 익숙해 보였지. 반대로 자신을 칭할 때는 소인, 소첩이라 칭하며 한없이 낮추더라. 그러면서 말하는 것은 상전이 말하듯 하니, 그야말로 제멋대로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아름다운 것. 붉은 빛. 그리고 결정화된 노블레스의 신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죽음 이후에도 광채를 잃지 않는 저 모습이겠지. 아쉽다니까, 위험 물질만 아니면 예쁘게 보관했을텐데.
싫어하는 것? 뭐가 되었든 아름답지 않으면 가치 없지 않나.
탐미주의적이고 가치주의적인 성향이 짙다. 뭐가 되었든 아름다운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편.
능력의 유무는... 어차피 이 바닥에 들어올 정도면 어느 정도 검증된 능력 아닌가? 설마 이 정도도 못 하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소첩은 그 아름다움에 가치를 매기도록 하겠네.
추위를 타지 않는다. 아니 추위에 둔감한 건가?
생각해보면 추위 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에 둔감한 모습을 보인다.
취미라면 보석 수집.
특히 붉은 보석만 모으는 편이라 한때 시장의 루비나 스피넬 등 각종 붉은 보석들이 동이 난 적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새하얀 쥘부채를 손에 쥐고 다니더라.
전시에도 그것을 손에 놓지 않으니, 새하얀 쥘부채 가득 핀 붉은 꽃들. 그 사이로 새하얀 나비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절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오른쪽 눈은 의안이다. 보석같은 눈은 취향인가 보지. 어쩌다 의안이냐 한다면, 글쎄. 사고 때문이라나? 한쪽 눈이 없으니 당연히 시야각이 낮아질 법도 한데, 피워낸 꽃은 그러한 눈의 역할도 대신 해주고 있어서 오히려 전투 중에는 멀쩡하던 때보다 더 시야가 넓어졌다더라.
온 몸에 흉터 같은 덩굴 문신이 가득하다.
자세히 본다면 문신 아래 가득한 흉터를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눈에 띄는 것은 온 몸을 얽매는 덩굴 문신 뿐.
그리고 약물을 먹으면 그 몸에 꽃이 한가득 피어나더라. 그래, 꽃처럼 살고자 하더니 기어코 꽃이 된 모양이었지.
꽃은 늘 덧없이 피고 지지.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눈에 담고자 한다면 귀공께선 어찌 하겠는가?
부채로 입을 가린 이가 눈을 둥글게 휘며 웃는다.


사냥꾼과 사냥꾼
최근 린 섬과 메모리아 동부 사이 어딘가에 있는 해역에서 벌어진 해상전에서 바다를 두고 마주했다. 메모리아의 군함에 홀로 올라타 몇몇개의 군함을 가라앉힌 련화에 네핀이 원거리에서 능력을 쏘아던져 소모전을 유도하였으며 이탓에 찬드라의 해군 측이 후퇴하게 되었다. 바다를 사이에 둔 탓에 서로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 능력은 기억하고 있으니. 서로를 서로의 사냥감으로 점찍어 둔 상태. 마주한다면 그냥 있진 않으리라.


기억에 묻힌 초상
1277년의 어느 날, 프레이야의 한 극장에서 두 아이가 마주쳤다. 극장의 지하에서 살던 아이, 그리고 극장 일을 배우러 온 아이. 같은 극장에서 마주친 두 아이는 금새 친해지게 되었다. W와 B.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의지하는 두 사람. 그러나 1279년, 새하얗던 아이가 해군들과 사라진 것으로 둘의 이야기는 끝이났다. 그 뒷이야기에 남겨진 팬던트 하나는 모든 것의 종장일까, 아니면 만남의 예고일까.
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진, 혹은 잊고야만 이것은 어느 어린 날의 초상이다.


이것은 친구? 동료? 원수!?
본디 같은 계급이었던 련화와 배러노프가 종종 임무를 같이 하곤 하던 어느 3년 전의 날, 둘과 동갑인 신입이 들어온 것에 그 신입을 납치해서 놀러다닌 것이 시작이었다. 상사인 두 한량과 그 사이에 낀 아우로라. 오죽하면 윈터가 다른 하나와 임무에 나가면 비번인 다른 사람도 은근슬쩍 껴서 셋이서 돌아다닐 때도 있을 정도. 이 모든 일에 윈터의 의지는 없다. 오늘도 련화와 배러노프의 사이에 낀 윈터는 두 사람에게 이끌려 어디론가로 향한다.



아름다운 적
련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 보석의 광채도 좋지만 마치 피같이 붉게 빛나는 결정화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닌 이는 귀족들, 그리고 놀랍게도 미하일의 능력은 쓰면 쓸수록 결정화된 파편이 툭, 툭. 대리석의 조각처럼 떨어져 나갔지. 죽이지 않아도 몇 번이고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이. 그것을 어찌 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첩을 원한다고? 어머 마침 소첩도 귀공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럼 서로의 목을 걸어 보자구나. 낭만적이기도 하지. 두 사람은 이 전쟁의 승패를 내기의 판으로 삼았다. 이긴 이가 그 사람의 목숨 줄을 쥐는 것으로. 련화가 이기면 미하일을, 미하일이 이기면 련화를. 서로의 생사여탈권을 건 내기가 시작되었다.


花無百日紅人無千日好 화무백일홍인무천일호
시린 겨울이 끝나면 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해의 봄에는 하얀 나비의 날개짓 대신 붉은 꽃이 폈더라. 대대로 주군을 지키는 연(戀)과 바다를 지키는 하(河)는 아주 오랫동안 린의 대지와 대양으로서 교류를 하던 집안이었다. 왕가의 시대가 저문 뒤에도 그 교류는 여전하였으니, 그 교류 속에서 직계의 아이들이 마주치는 것도 당연하리라. 그러나 세월이 흘러 두 아이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혈야홍접 이후, 다시 마주친 두 아이는 더이상 어릴때와 같지 않았으니. 수 년 후, 두 꽃과 바다가 달 아래에서 상관과 부하로서 마주하게 된 이것은 운명의 장난일까? 어찌하여 한결 같으리라 생각하시나. 긴 세월 물길이 변하듯, 해마다 피는 꽃이 다르니. 그저 이또한 흘러가리라.


지워지지 않을 충성 서약
1292년, 니샤카라가 된 련화에게 이능력 사용에 대해 교육을 한 것이 유리였다. 단순 상사와 직속 부하, 정도의 관계였으나 유리의 각종 가스라이팅과 더불어 무언가를 섬기는 연 가문답게 련화가 유리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으로 관계가 변화하였다. (니샤카라도, 찬드라도 아닌 개인을 향한 충성이었다) 심지어 권력은 커녕 노블레스 외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련화에 유리가 녹스에 취임하고 나서는 련화의 편의를 일부 봐주곤 하였으며 가끔 일으키는 사건들도 무마를 해주는 편. 어떻게 보면 뒷배라고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련화를 신임해서인지, 아니면 이용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궁금하지도 않고.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주군의 명령뿐.


인간의 기준
인간을 인간이라 말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생김새? 사상과 행동? 마음? 혹은 영혼? 무엇이 되었든 사람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인간을 나누었으며, 련화의 기준은 다소 독특한 편이었다. 누가 보아도 사람인 스스로는 인간이 아니었고, 누구나 인간이 아니라 말하던 비스트는 사람이었다. 받아들여지는 것의 차이겠지. 아니면 연 가문에서 비스트를 배동으로서, 소꿉친구로 키우기 때문이던가. 그렇기에 세스를 만났을 때도 련화는 그를 높였으면 높였지 한 번도 낮춰 보질 않았더랬다.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현재가 된 지금, 세스는 여전히 련화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듯 하였지.
인간의 기준이 무엇인가, 꽃이 말하였다. 우리와 같은 것을 먹되 인형이 아닌 모든 것들이라네. 그럼 나를 빼고 모두구나.


붉은 꽃잎 흩날리던 날
1296년, 련화는 불과 2년만에 그러나 다른 직위를 들고 서남부 지역을 다시 찾았다. 련화는 니샤카라의 군인들과 단체로 적습을 하였고, 그 자리에 정말 우연찮게 뢰베가 있었지. 지금 묻은 피가 아군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난전 속에서 뢰베가 부하 하나를 구하겠다고 니샤카라군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놓칠 련화가 아니었지. 붉게 피어오르는 꽃잎, 그 사이로 흩날리는 핏물과 팔 하나. 만수사화를 아시나? 새하얀 꽃잎이 붉게 물드니 그야말로 장관이더라. 결국 팔 하나를 희생한 뢰베는 부하를 구해 도망쳤고, 그런 그를 놓쳐버린 련화는 다음엔 팔이 아니라 그 목을 노리겠노라고 다짐하였다. 1296년, 여름의 어느 날이다.


꽃을 꿈꾸는 이, 꽃의 꿈을 꾼 이
련화가 사관학교 졸업반일 당시 조이가 입학을 했다. 수석과 신입생. 그 해 최고라 불리우던 이에게 어린 아이가 달려와 인사를 건넨 것으로 이 인연은 시작된다. 당시 조용하고 무감하고 반응이 없어 인형이라고까지 불리우던 련화를 조이는 동경이라도 했던 것일까? 완벽에 가까운 그의 행보에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관학교에서의 1년 동안 조이는 련화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것은 졸업식 이후 멈추게 되었지만 조이가 니샤카라가 된다는 것도 련화를 쫒아서라니, 그 동경은 남다르겠지.
하지만 니샤카라에서 다시 만난 련화는 학교에서 보았던 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동경하던 이의 소실. 과연 이것을 동일인이라 봐도 좋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주 긴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